키워드 동남아 책은 그냥 역사 책으로 접하면 쉽게 질려버리고 넘어갈 수 있는 역사 이야기도 독자들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게 풀어 놓은 책이다.
영국의 식민 정책과 인도인 이주
16~17세기 포르투갈,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의 동방항로 진출로 유럽인들을 맞이하게 된 동남아시아가 본격적으로 식민화한 것은 18세기 후반, 19세기 초반부터였다. 산업혁명으로 대량생산 체제를 갖추게 된 유럽은 대량의 천연자원이 필요했고, 다양한 자원과 자연환경을 보유하고 있던 동남아시아가 그 주요 타깃이었다. 해안선이 복잡하고, 섬이 많은 해양부 동남 아시아의 경우 식민 이후 주석과 같은 광물자원이나 상품작물이 대량으로 생산되어 수출되고 있었다. 반면, 버마(현 미얀마)의 에야와디강, 시암(현 타이)의 차오프라야강, 베트남 남부의 메콩강 유역을 중심으로 대규모 벼농사가 진행되고 있던 대륙부 동남아시아 지역들에서는 서구 제국의 통제 아래 쌀과 같은 식량이 대량으로 생산되어 인구가 많은 주변의 인도, 중국 등 역외나 상품작물을 생산하느라 식량자원이 부족해진 역내의 해양부 동남아시아로 수출되었다. 1869년 개통한 수에즈 운하 덕분에 매우 가까워진 유럽 역시 주요 수출시장이었다. 문제는 피식민지로서 동남아시아는 땅이 넓고 식생도 다양한 반면, 인구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는 점이다. 식민지 이전의 동남아시아는 노동력이 모자라 자급자족하거나 역내에서 유통될 정도, 혹은 기껏해야 가까운 중국이나 인도로 수출할 수 있을 정도의 농업, 광업, 어업, 임업 상품만을 생산했다. 장기 운반이 가능한 일부 품목의 경우에는 드물게 무슬림 상인들에게 팔 수 있을 정도의 상품을 생산했다. 그러나 유럽인들이 생각하던 식민지 경제는 그 수출 대상이 세계시장이었기 때문에 최대한 넓은 경작지를 유휴지 없이 조성한 뒤 최대한 많은 인구를 투입해 최대한 많은 생산물을 생산해내는 방식이었다. 여기서 관건은 노동력 확보였다. 19세기에서 20세기 중국계, 인도계 노동자들이 동남아시아로 대거 유입된 이유가 이것이다. 중국계 이주민들이 동남아시아 전역에 퍼졌던 것과는 달리, 인도인들의 이민은 영국 식민지 내에서의 이동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이유로 18세기 후반 인도에서의 지배권을 확립한 영국이 19세기 바다를 통해서는 싱가포르섬과 술탄들이 다스리던 말레이반도로, 육로로는 꼰바웅 왕조가 다스리던 미얀마로 이동했을 때, 인도인들 역시 군인, 상인, 노동자, 관료 등의 다양한 얼굴을 하고 각지에 진출했다. 흥미로운 점은 영국인들이 인도인들의 이주를 계획 및 장려하면서 식민지배자의 눈으로 본 인도 각 지역의 특징과 습성을 토대로 사람들을 직업군에 따라 분산 배치했다는 사실이다. 지금은 인도, 스리랑카,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네팔, 부탄 등으로 나뉜 이 남아시아 지역이 워낙 땅이 넓고 지역 간 이질성 역시 극에 달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들에 대한 영국인들의 선입견 탓이기도 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주로 경찰이나 용병, 군인으로 진출한 시크교도들이다. 신자들이 자기 머리보다 큰 터번을 쓰는 것으로 유명한 시크교는 영국 점령 이전 인도 서북부 지역, 지금의 파키스탄 지역인 펀자브 지역에서 발생한 종교로, 그 탄생부터 무굴제국과의 투쟁으로 시작했다. 그런 이유로 영국은 무굴제국을 점령하고 난 뒤 펀자브 지역의 시크교도들을 경찰이나 군인으로 많이 활용했고, 이후 싱가포르, 말레이반도, 미얀마의 양곤, 더 나아가 홍콩이나 상하이의 조계지에서도 그대로 이들에게 경찰이나 군인 역할을 맡겼다. 1873년 말레이반도 페락주의 주석광산에서 암약하던 중국계 비밀결사 조직들을 진압하려고 불러들인 이들 역시 무장한 시크교도들이었다. 이런 이유로 몇몇 지역에서는 여전히 이 시크교도들이 식민 지배자의 '충견'으로 여겨져 배척당하기도 하고, 혹은 도시의 치안을 담당해왔다는 이유로 지금까지도 그 후손들이 경비 관련 업무를 맡기도 한다. 심지어 말레이시아 페낭의 중국계 씨족협회 건물에는 그 정문에 시크교도의 석상이 서 있기도 하고, 영국의 식민지배가 끝난 이후에도 시크교도의 후손들이 쿠알라룸푸르의 도교 사원에서 경비 및 관리 업무를 보고 있는 경우도 있다.
2023.01.15 - [자기계발서] - 굿모닝 해빗, HIGH FIVE HABIT-2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