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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키워드 동남아-1

by 책 읽는 바오밥 나무 2023. 1. 30.

 

 

 키워드 동남아는 그동안 휴양지로만 알려졌던 동남아의 역사, 사회배경 등등 우리가 쉽게 알지 못했던 얘기들을 풀어주는 책이다. 읽으면서 흥미진진한 부분이 많았다. 특히 역사 부분은 생소하여 더 흥미롭게 다가왔다. 바나나머니의 유래와 식민지의 역사등을 살펴보자.

 

일본군이 만든 '바나나머니'

1895년 청일전쟁의 결과로 맺은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타이완을 할양받은 이래 일본은 한반도와 만주를 거쳐 1937년 중일전쟁을 계기로 중국 중부, 동남 지역의 일부까지 점령하게 된다. 중국 전역을 휩쓰는 듯 보였던 일본군은 수도를 아예 충칭으로 옮겨버린 장제스 국민정부의 회피 전략에 서서히 고전하기 시작한다. 또한 계속되는 전쟁으로 전비조달이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에 처하게 되었고, 일본 만주국뿐 아니라 본국까지도 생산량의 한계에 다다르기에 이른다. 이러한 상황에서 독일의 군사행동으로 촉발된 2차 세계대전은 일본에게 또 다른 기회였고, 그 기회를 틈타 1941년 12월 진주만 공습과 군사적 남진을 통해 1942년 초, 홍콩과 동남아시아 점령을 마쳤다. 일본은 동남아시아 통치의 편의성을 위해 동남아시아 식민지 권역을 재분할하고, 군정을 싱가포르에 두어 관리했다. 크게 '갑'과 '을'이라고 명명한 두 권역으로 분할했는데,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는 '을', 영국령 말라야, 해협식민지(싱가포르, 페낭, 믈라카), 네덜란드령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의 해양지역은 '갑'에 해당했다. '을' 지역은 프랑스가 일본의 동맹인 독일에 의해 점령된 상태였기 때문에 기존 식민지 통치 시스템을 유지하는 간접통치 방식을 적용 했고, '갑'지역의 경우 적국이 연합군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싱가포르를 중심으로 직접통치 방식을 적용해 그 지배 방식을 구분했다. 영국에 의해 건설되어 개항한 동남아시아 금융 및 물류 허브 도시, 싱가포르는 그 명칭마저 일본식으로 쇼난토라고 바꿔 불렀다. '대동아공영권'이라 불리던 이 광범한 권역 내에서 동남아시아의 역할은 분명했다. 바로 핵심지역이자 주요 격전지였던 중국 전역과 태평양 전선에 원자재와 인력, 자본을 공급하는 역할이었다. 당시 1억 5,000만 명으로 추정되는 노동력에 더해  고무, 주석, 철, 석유, 쌀 등의 각종 생산품이 풍부한 이 지역이 광범위하게 형성된 전선을 유지하기 위한 보급기지로 유용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러나 일본에게는 동남아시아 지역으로부터 공급받을 자원에 대해 지불할 자금이 없었다. 당시 중국 내에서 무분별하게 발행되던 군표(점령지에서 점령군이 발행하는 임시 화폐)와 식민지 화폐로 인해 촉발된 인플레이션은 심각할 정도였고, 일본 본국 역시도 비용이든 물자든 제대로 지원해줄 여력이 없었기 때문에 동남아시아 내의 일본군과 행정관료들은 '자급자족'을 최우선 목표로 알아서 생존해야만 했다. 

 

2023.01.30 - [인문학] - 컬러의 방-3

 

컬러의 방-3

컬러의 방 폴 심프슨 지음 박설영 옮김 컬러의 방은 색깔별로 관련된 역사, 사회, 브랜드등등의 이야기들을 풀어주는 재미있는 책이다. 색깔별로 이야기를 풀어내기에 똑같은 얘기라도 흥미진

the-baobabtree.com

 

 

제국주의가 동남아에 남긴 것

 근대의 화폐는 신뢰의 산물이다. 신뢰의 대상은 다름 아닌 해당 화폐를 발행하는 주체, 즉 국가다. 우리가 금속도 아닌, 종이쪼가리에 불과한 달러를 신봉하는 것은 미국이라는 국가가 가진 영향력이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따라서 이 국가가 보증하는 화폐 역시 가치가 오르면 올랐지 내려가지는 않을 것 이라는 확고한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시기 일본은 어떠했을까. 당시 동남아시아인들, 특히 상업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어 동남아시아 지역의 경제를 장악하고 있던 화교 그룹의 경우 일본을 신뢰하고 있지 않았다. 각지에서 이루어진 일본군의 학살과 무력시위 아래 대량으로 발행된 남발권을 기반으로 물자를 공급했지만, 대부분은 집 안에 영국 식민 시기 화폐를 꽁꽁 숨겨두고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은 홍콩이나 중국 역시 마찬가지여서 중국인들은 HSBC(홍콩-상하이 은행)가 이본 침공 이전 발행한 홍콩달러나 장제스 국민당 정부가 화폐개혁(1935) 이 후 발행한 법정 화폐를 그들끼리 몰래 사용하거나 쟁여놓고는 일본군이 발행한 군표나 남발권과 같은 식민지 화폐를 배척하거나 쓰는 시늉만 했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은 일본의 자금 동원이나 물자 공급에 차질을 빚어 전쟁 수행에 어려움을 주었다. 일본군은 점령지에서 다양한 정책을 통해 일본군이 각지에서 발행한 화폐를 사용하도록 독려했지만, 갈수록 패색이 짙어지고 있던 전황을 이미 눈치채고 있던 현지인들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그에 따라 화폐를 더욱 남발하는 악순환이 벌어져 결국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초래하게 된다. 이렇게 남발된 화폐들은 그대로 동남아시아와 홍콩의 각 가정에 지금 까지도 남아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베이와 같은 경매 사이트에서 쉽게 구할 수 있을 정도다. 심지어 2015년 무렵에도 일련의 홍콩인들이 같은 시기에 식민을 겪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현 시세 수백만 달러의 군표를 가지고 일본 정부에 배상을 요청한 적이 있을 정도다. 결국 '바나나머니'와 군표를 포함해 일본이 발행한 전쟁기 화폐는 1945년 8월 전쟁이 끝나면서 휴지 조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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