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정의 방>
짙은 검은색은 종류가 아주 다양하다. 이를테면 피치pitch(원유를 정제하고 남은 찌꺼기), 제트jet(나무에 강한 압력을 가해 만든 원석), 블랙 스피넬black spinel(또 다른 원석), 피치스톤 블랙peach stone black(복숭아 씨앗을 탄화시킨 것), 램프블랙lampblack(그을음), 바인블랙vine black(포도나무 잎과 가지를 새카맣게 태운 것), 차콜 charcoal(최소한의 산소로 나무를 태운 것), 본 블랙bone black(동물 뼈), 옵시디언obsidian, 즉 흑요석(유리질 화산암)등이다. 하지만 이중 어떤 것도 2019년 MIT 에서 발명한 탄소 나노튜브로 만들어진 물질만큼 완전히 까맣지는 않다. 과학자들은 이 궁극의 검은색이 유입되는 빛의 99.9995퍼센트를 흡수하므로 2016년 영국의 나노시스템즈사에서 개발한 반타 블랙('분홍의 방'을 참고하라)보다 훨씬 검다고 주장한다. 브라이언 워들 항공우주공학과 교수가 이끈 이 MIT팀은 탄소 나노튜브를 알루미늄 위에서 성장시켜 전도율을 개선할 방법을 실험하던 중 이 도료를 만들게 되었다. 마치 울창한 숲처럼 작은 탄소 나노튜브 무리가 유입되는 빛 대부분을 가두기 때문에 이 물질은 새까만 빈 곳처럼 보인다.
블랙홀을 중력이 매우 강해 그 무엇도, 심지어 빛조차도 탈출할 수 없는 우주 공간으로, 이웃한 물체에 미치는 영향을 관측해 그 위치를 추론하는 천체물리학자의 눈에조차 보이지 않는다. 블랙홀에는 세 종류가 있다. 빅뱅 직후에 형성되는 작은 원시 블랙홀, 질량이 큰 항성의 중심이 저절로 붕괴해서 생겨나는 조금 더 큰 항성 블랙홀, 주변 은하와 같은 시기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초대질량 블랙홀이다. 우리은하 중심에 위치한 초대질량 블랙홀인 궁수자리 A*는 질량이 태양 400만 개와 맞먹는다.
오골계는 인도네시아가 원산지인 닭 품종으로, '검은 닭'을 뜻하는 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깃털, 고기, 뼈, 장기까지 전부 검다. 이는 과다 색소침착을 일으키는 EDN3 유전자 과잉으로 인한 증상이다. 오골계는 희귀하면서 경외의 대상이기도 한데, 마법의 힘을 가지고 있다는 명성 떄문에 12세기부터 종교적 의식에 사용되었다.
컬러의 방은 색깔별로 관련된 역사, 사회, 브랜드등등의 이야기들을 풀어주는 재미있는 책이다. 색깔별로 이야기를 풀어내기에 똑같은 얘기라도 흥미진진하고 무거운 얘기도 한층 가볍게 다가와 읽기 편하다. 오골계가 특정 유전자 과잉으로 검게 표현된다는 얘기 회색과 관련된 그리자이유라는 용어등의 알찬 내용들이 색깔별로 풀어진 컬러의 방이다.
2023.01.19 - [자기계발서] -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 RICH DAD POOR DAD-1
<회색의 방>
현대 예술에서 회색을 가장 강력하게 사용한 사례는 파블로 피카소의 <게르니카>다. 피카소는 1937년 4월 26일, 스페인 정부의 의뢰로 그해 여름 파리 전시회에 제출할 벽화 작업을 하던 중 나치 독일 공군 루프트바페가 스페인 북부 바스크를 융단 폭격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1654명이 사망하고 889명이 부상당한 이 끔찍한 습격 상황을 접한 뒤, 피카소는 작업하던 벽화를 내팽개치고 <게르니카>작업에 착수했다. 초기 버전에는 채색을 했지만 동료 화가들이 채색이 그림의 힘을 약화한다고 설득했다. 자신의 작업 모습이 담긴 일련의 흑백 사진에 영감을 받아 그가 신문지 색으로 팔레트를 제한해야겠다고 결심했을 가능성도 있다. 완성된 작품은, 비평가 허버트 리드의 말을 빌자면 '현대적 십자가상'과도 같다.
"이곳은 어떤 빛도 일반 유리로 통과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 효과가 마법과도 같다. 휘황찬란하진 않지만 무지갯빛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장미와 긴 창이 훌륭하게 그려진 창문들. 그 만듦새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은 사파이어, 에메랄드, 루비, 토파즈, 자수정, 그리고 그와 비할 바 없는 훌륭한 재료들이 사용된 것처럼 보인다. 다른 실내 장식도 건축적인 면에서 참으로 멋지지만, 이보다 아름다운 것은 없다." 1878년, <<프레이저스 매거진>>에 실린 한 기사의 일부분이다. 이 구절은 트루아 대성당에 설치된 180개의 스테인드 글라스가 13세기부터 수백만 명의 방문객들에게 얼마나 큰 황홀경을 선사했는지 잘 보여준다. 1098년에 설립된 시토 수도회의 금욕적인 수사 및 수녀들에게는 그러한 화려함이 신을 경배하는 데 방해가 되었다. 부르고뉴수도원장이자 신비주의자로 새로운 교단에 지배적인 영향력을 미쳤던 성 베르나르는 모든 종류의 형상과 웅장한 건축 양식, 알록달록한 색깔을 혐오했다. 최초의 시토 수도회의 내부는 그의 신념에 따라 단색으로만 장식됐고, 엄숙한 분위기를 풍겼다. 유리도 흰색이나 프랑스어로 '회색'을 뜻하는 그리스를 따서 그리자이유grisaille라 불리는, 착색된 회색을 사용했다.
많은 화가가 그리자이유를 바탕색으로 사용했지만 일부는 트롱프 뢰유(실물이라고 착각하도록 만든 디자인을 말한다)효과를 주기 위해 사용했다. 14세기 초반에 완성된, 일곱 가지 미덕과 악덕을 그린 조토의 우화적 프레스코화는 파도바의 스크로베니 예배당 북쪽과 남쪽 벽을 장식하며 수많은 방문객에게 3차원이라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영국의 조각가 헨리 무어는 이 그림을 '이탈리아에서 본 가장 훌륭한 조각품'이라고 평가했다. 조토의 착시 효과 실험은 이게 다가 아니다. 화가이자 건축가인 조르조 바사리는 자신의 책 '예술가들의 생애'에서 이렇게 회상한다. "하루는 조토가 스승인 치마부에에게 장난을 치고 싶어서 치마부에가 등을 돌렸을 때 그가 그리고 있던 벽화에 작은 파리를 그렸다. 치마부에는 파리를 쫓으려 길길이 날뛰었고, 잠시 후 자신의 착각임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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